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E132.240613.1080p.WANNA 다시보기 토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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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유영철. 2023년 9월 어느 날, 오랜 세월 굳게 잠겨 있던 한 공간의 자물쇠가 열리고 사람들이 청소를 시작한다. 이곳은 그 누구도 절대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 서울구치소의 사형집행장이다. 사형집행장이 정비되고 얼마 뒤, 전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사형수들의 이감이 이뤄진다. 그중 교도관들을 가장 긴장시킨 사형수가 있었으니,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20명을 살해한 대한민국 최악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다. 경찰관이 되고 싶었지만, 색맹으로 이내 꿈을 포기하기도 했던 유영철. 그는 오히려 색맹이 살인을 저지르기에 용이했다며 자신이 벌인 잔혹한 범행에 대해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또 유영철은 피해자 유가족의 면회 신청을 거부하며 대신 유가족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전해 들은 교도관조차 유영철은 사이코패스가 맞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영철이 유가족에게 하려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방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동으로 잠기는 유영철의 비좁은 독방 안에서 단둘이 마주 앉아 7년간 유영철과 면담했다는 이윤휘 교도관. 그가 최초 자백한 피해자 수는 30명,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 수는 20명. 유영철은 자신의 여죄를 고백했을까?
인간사냥 - 피라미드의 덫. 1998년 전국 곳곳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 남녀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명문대생부터 갓 제대한 사람, 취업 준비생, 사회 초년생까지 가릴 것 없이 어쩐 일인지 가족들과 연락이 뜸해지더니 몇 개월째 생사도 알 수 없어진 청년들. 그 첫걸음에는 친구의 전화가 있었다. “어머 제대했다고? 너무 잘됐다! 너 시간 많지? 우리 일단 만나자!” 제대하자마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3일간의 아르바이트를 제안받고 강남으로 찾아간 석민이. 이런 전화를 받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학생이던 현주도, 취업 준비생이던 창호도 비슷한 시기에 3, 4일간의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아 강남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기가 막히게 똑같은 3일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3일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되는데…. 그들이 찾아간 회사의 정체는 바로 S.M.K. 숭민코리아. 숭민코리아는 당시 잘 나가는 종합 유통회사로, 연 매출 최고 6천억! 전국 각지에 대리점만 수백 개에 판매원은 20만 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이었다. 이 모든 걸 이룬 마법 같은 방법은 바로 ‘다단계’ 방식이었다. 정에 약하고 거절 못 하는, 다단계 판매 방식에 특화된 한국인의 정서로 인해 승승장구한 SMK는 회사 신임 사장 ‘이광남’이 취임으로 더욱 상승세를 맞이한다. 다단계 사기로 유명한 ‘조희팔’과 ‘주수도’ 모두 SMK 출신이라 이광남은 ‘피라미드의 대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람을 모으기만 하면 일을 하지 않아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꿈만 같은 사업의 청사진을 앞에 둔 세 사람. 과연 석민, 현주, 창호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예고된 불청객. 누군가에게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2003년 9월 11일 추석 연휴, 한반도에 가을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가 들려온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수천만 톤의 대형 크레인이 엿가락처럼 휘어질 정도의 살인적인 강풍이었던 것! 당시 기상관측 사상 최초로, 측정 최댓값인 순간최대풍속 초속 60m를 기록하며 무려 131명의 사상자를 낸 괴물 태풍, 그 이름은 ‘매미’였다. 2003년 9월 12일. 마산항 인근 대형 상가. 이곳은 추석을 즐기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예비부부 정시현 군과 서영은 양도 그중 하나였다. 과외 학생과 함께 지하 3층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갑작스레 찾아온 정전으로 차를 세워둔 지하 1층 주차장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 예고 없이 들이닥친 해일에 중심을 잃게 되고, 이중 두 사람은 물살에 휩쓸려 지하 주차장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마는데... 더 끔찍한 건 해일에 떠밀려 온 수백 개의 원목이 지하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 구조조차 쉽지 않다는 것. 골든타임을 놓친 채 물속에 갇힌 아들딸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에서 울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는데. 태풍으로 한순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재난 생존자들. 매년 찾아오는 이 끔찍한 재앙을 막을 순 없었을까? 재난 생존자들이 전하는 가슴 아픈 그날의 이야기
비밀의 창시자 - 비트코인이 처음 생기던 그날 2008년. 세계에는 최악의 금융 위기가 몰아닥쳤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 세계 금융위기로 번지고, 기존 금융 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 각지에서 시위와 폭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저는 새로운 전자화폐 시스템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처음 나왔을 땐 그렇게 특이하진 않았습니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아무도 이 정도의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몇 년 동안 ‘0원’에 가까웠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첫 발행 후 15년이 지난 지금 1비트코인에 약 8,000만원. 총 발행량은 약 1,970만 개, 현재 가치는 약 1,500조원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혁신적인 미래 화폐라는 칭호부터 디지털 쓰레기라는 평가까지. 누군가는 거대한 농담같은 현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금 당장 사야한다고 하는 비트코인. 대체 비트코인이 뭐길래 이처럼 큰 주목을 받는 걸까? 비트코인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사람이다.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 그가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올해 최고가로 계산하면 약 100조원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라져 버렸다.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던 사토시 나카모토를, 사람들은 찾기 시작했고, 유력한 후보들이 떠올랐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왜 비트코인을 만들었을까? 베일에 싸인 그의 정체를 추적해 본다.
살인자의 데칼코마니
황제의 비밀특사 904년 4월 14일 늦은 밤.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커다란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다. 불길이 시작된 곳은 경운궁 한가운데 있는 함녕전, 바로 고종황제의 침전이었다. 화재 당일 밤 거세게 불어닥친 북동풍으로 인해 경운궁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모두가 눈앞의 풍경에 말을 잇지 못하는데... 그즈음 항간에 이상한 말이 떠돌기 시작한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경운궁에 불을 질렀다!” 이 의혹은 한 장의 괴문서로부터 시작됐는데... 과연 괴문서가 가리키는 ‘경운궁을 휩쓴 대화재’의 비밀은 무엇일까? 혹시 대한제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2년 후. 비밀리에 한 남자를 불러들인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건 임무를 맡기게 된다. “황제의 특사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 그리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각국 대표들에게 알리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회복하도록 하라!”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운 대한제국의 운명을 걸고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게 된 세 명의 특사. 이들이 바로 ‘헤이그 특사’다. 1907년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한 세 명의 특사들은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기사의 전당’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세계 각국대표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식활동에 나선 특사들, 과연 이들은 고종황제가 내린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으로 불리던 시기, 스러져가는 제국의 운명을 되살리기 위한 특사들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
위험한 커넥션 - 강서구 재력가. 청부살인사건 때는 2014년 3월 4일 오전 7시.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려던 류란 기자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 강서구에서 노인이 살해당했다는 살인사건 제보였다. 취재를 하기엔 단서가 너무 없었지만, 류란 기자는 고민 끝에 후배 기자와 현장으로 달려간다. 사건 현장은, 서울 강서구 도로변에 있는 한 건물. 세 개의 동이 연결된 초대형 건물이었다. 피해자는 해당 건물 주인인, 60대 양 회장. 그런데, 양 회장의 재산은 이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곳곳에 땅과 건물을 소유한, 수천억 대 재력가였던 것. 그런 재력가가 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의 건물에서 살해당한 걸까?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2팀 형사들은, 양 회장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사건 현장에 있는 CCTV에 범죄 과정이 전부 찍혀 있었는데... 양 회장을 살해한 범인은 44세 장영범. 인천에서 가품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서울 강서구의 수천억 재력가인 양 회장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영범의 통화기록에서 양 회장이 죽은 그날, 그 시간대 전후로 여섯 차례나 주고받은 수상한 휴대전화 번호를 발견했다. 확인 결과, 해당 번호는 대포폰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과연 이 대포폰의 주인이 양 회장 살해를 청부한 걸까? 양 회장이 사망하기 전 남긴 단서들, 장영범의 행적을 파헤치며, 이들 뒤에 숨어있는 제 3자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형사들.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는 바로 현직 유력 정치인? 그 사실에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사판 누아르 ‘강서구 재력가 청부살해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징역 100년형의 굿 선(good son) 1993년 9월 25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미국 시카고의 늦은 밤. 한 주택가 차고 안에서 품 안에 총을 감춘 채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열아홉 살의 한인 2세 앤드류 프린스 서. 미국 동부 명문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우등생이자, 전도유망한 청년이 어쩌다 범죄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일까? 사건은 한 달 전, 누나 캐서린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오두베인은 우리 집안의 원수야!.. 우리 집안의 아들로서 제발 네가 복수해 줘!” 누나의 간절한 부탁 속에 등장하는 이름. 로버트 오두베인. 그는 누나 캐서린의 오래된 남자 친구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 오는 누나의 전화에 앤드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1976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 시카고로 이민 온 앤드류네 가족. 아빠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딸 해성이에겐 캐서린 서. 아들 승모에겐 앤드류 서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부부 모두 한국의 명문대 출신이었지만, 언어의 한계로 미국에서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 끝에 마침내 작은 잡화점과 내 집 마련에 성공하고 가족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뤄가는 것 같았다. 늘 부모님 곁에서 가게 일을 도왔던 착한 아들 앤드류와 달리 누나 캐서린은 자유로운 ‘아메리칸 걸’이 되길 원했다. 여전히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아빠는 그런 딸이 못마땅했고, 부녀간에 세대 갈등, 문화적 갈등은 끊이질 않았다. “여기는 내 집이야. 내 말이 법이라고! 내 말대로 안 할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나 좀 내버려둬!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여긴 한국 아니야 아메리카라고!” 이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에게 비극의 그림자가 조용히 드리워지고 있다는 걸.
그놈을 잡아라! 401일의 탈주 때는 1998년, 부산 초읍동 파출소로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 온다. “그놈이 또 나타났어요!” 인적이 드문 밤이면 으슥한 골목 사이로 나타난다는 ‘그놈’. 주로 여성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놈’의 위협적인 범행은 벌써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속출에 경찰, 119 구조대가 수 차례 검거에 나섰지만 놈의 그림자도 밟지 못한 상황! 과연 온 동네를 불안에 떨게 한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갈수록 대담해져 낮에도 동네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 범인은 바로, 귀여운 얼굴에 새빨간 엉덩이, 긴 꼬리를 가진 자! 마을 옆 동물원에서 스스로 철창문을 열고 탈출한 히말라야 원숭이 ‘치타’(5세)가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범이다. 1997년 11월, 녀석이 마을에 나타난 초반엔 주민들도 신기해하며 먼저 다가가 먹을 것도 주는 등 친근하게 대했다는데... 어느 날부터 그 호기심은 공포로 뒤바뀌고 만다! 점점 선을 넘어 과자, 아이스크림을 든 아이들과 늦은 밤 귀가하는 여성들을 위협하다 끝내 동네 할머니의 옆구리를 물어버리는 대형 사고까지 치고 마는 녀석! 결국, 동네 청년들, 동물원 관계자,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진까지 문제의 녀석을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신출귀몰 원숭이 치타는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 시기! 잡힐 듯 잡히지 않던 희대의 탈옥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신창원! 그 이유 탓에 신창원 원숭이라고도 불렸던 원숭이 치타. 놀랍게도 둘 사이에 존재했던 평행이론처럼 그들의 운명 역시, 같은 결말을 맞이할까?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총동원된 필사적인 추격전이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인질범의 흉터 무더위가 한창인 2004년 8월 8일. 서울의 한 빌라에 할머니가 혼자 어린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손자가 낮잠에 든 사이 화장실에 다녀온 할머니는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공포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 문 앞에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가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놀라 비명을 지르는 할머니를 향해, 남자는 곧바로 커다란 회칼을 들이밀며 이런 말을 건넨다. “할머니... 나 누군지 알지?”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할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남자의 정체는 두 명을 칼로 잔인하게 찔려 살해 한 살인 용의자로, 며칠 전 우연히 할머니가 본 수배 전단지 속 그 얼굴이었던 것!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할머니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옆 방에는 손자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 할머니는 결심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침착하게 모면해야겠다고.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질범 이 씨의 사건은 8일 전, 한 커피숍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이 씨는 여자친구에게 폭행을 행사한 죄목으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여자친구의 신고를 받고 이 씨 검거를 위해 출동한 형사는 두 명. 서울 서부서의 강력반 소속 형사인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이다. 두 사람은 여자친구가 이 씨를 만나기로 했다는 신촌역 인근의 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심형사는 현장에 나타난 이 씨를 향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때였다. 이 씨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심형사와 이순경을 향해 느닷없이 칼을 휘둘렀다. 칼에 맞은 두 형사는 필사적으로 이 씨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용의자역시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급소인 왼쪽 가슴을 두 차례 찔린 심형사와 무려 아홉 차례나 등을 찔린 이순경은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심재호 형사는 어린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그날 이후 심형사의 아내 황옥주씨는 아빠를 찾는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순직 경찰관의 추모공간인 추모게시판을 찾아 글을 남기고 있다는 황옥주씨. 꾹꾹 눌러 쓴 그리운 마음은 어느새 두꺼운 책 한 권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이재현 순경의 어머니 역시 여전히 그날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칼에 찔려 허망하게 떠난 아들 생각에 지금도 주방에서 칼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어머니. 두 형사를 무참히 살해하고 8일 만에 인질범으로 나타난 이 씨. 과연 살인 용의자를 마주한 할머니는 악몽 같은 그날, 무사히 손자를 지킬 수 있었을까?
전두환 심판의 날 1996년 8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평소 한산하던 법원이 기자와 방청객들로 북적거린다. 이날 재판에 배치된 법정 경위만 무려 30여 명! 피고인의 등장에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판사들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정작 피고인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대며, 죄인이라기엔 너무나 뻔뻔한 모습인데... 이 피고인의 죄목은 무려 14개. 잠시 후, 그에 대한 판사의 최종 선고가 내려진다.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 처한다.”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정체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 이날 열린 재판은 전두환의 1심 선고 공판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심판은, 한 검사의 말 한 마디로 시작되는데... 마침내 성사된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체포 작전! 아수라장을 이룬 긴급체포 현장부터 4시간의 압송 과정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재판정에서 나란히 수의 차림으로 재회한 두 절친, 전두환과 노태우. 그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 뒷이야기와 교도소 수감 생활이 전격 공개된다.
경성축구단의 에이스. 때는 1929년 청명한 가을 한 축구장. 경신학교와 숭실중학교의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의 승리팀은 숭실중. 그런데, 기뻐해야 할 숭실중 선수들이 악에 받친 눈빛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 힘과 깡으로 경기를 하던 그 시절, 숭실중 선수들이 애타게 찾던 인물은 ‘까기의 명수’ 라고 불리던 김용식 선수였다. 김용식 선수에게 대차게 까인(?) 숭실중 선수들이 김용식 선수에게 달려드는데... 전설의 스타플레이어 김용식 선수의 이야기와 무려 100년 전 펼쳐졌던 축구사의 중요한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1920~30년대 축구 경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1935년 조선 선수와 일본 선수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펼쳐진다. 베를린 올림픽 축구 대표 선발전 격 대회인 ‘전일본 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이다. 김용식이 포함된 경성축구단이 조선 지역대표로 대회에 참가하고 대망의 결승전까지 오른다. 결과는 6대 1이라는 엄청난 점수 차로 경성축구단의 승리, 경성축구단은 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서 펼쳐진 두 번째 대표 선발전 격 대회인 ‘메이지신궁 경기대회’에서도 경성축구단은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선수들뿐 아니라 조선축구협회 또한 경성축구단 선수들이 대표 선수로 많이 뽑힐 거라는 기대 속에 1차 후보 명단이 발표되고... 선발 결과는 25명의 후보 가운데 조선인은 김용식, 김영근 단 두 명뿐이었다. 이런 부당한 상황 속에서 김영근 선수는 대표팀을 사퇴해 버리고 김용식 선수만 홀로 베를린으로 떠나게 되는데... ‘나는 여기 단 한 사람뿐인 조선인이다. 뼈가 부서지더라도 조선인의 명예를 위해 싸워야 한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한 김용식 선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1만 일 개인기 훈련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1만 일은 단순 계산으로도 무려 27년하고도 145일의 기간이다. 과연, 그는 이 엄청난 과제를 완수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축구사 최초의 순간들을 함께 해온 김용식 선수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자, 그의 제자들이었던 축구계 원로들에게 직접 들어본다.
마더 - 세 자매 연쇄 사망 사건 2006년 1월, 경주의 한 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엄마 최 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생후 9개월 된 딸 수빈이(가명)를 바라보고 있다. 수빈이는 엄마 최 씨가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 수빈이는 집에 온 지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희소병을 앓기 시작하고. 증상은 점점 심각해졌다. 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최 씨 부부의 형편은 빠듯해져갔다. 다행히 수빈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TV방송과 지역신문을 통해 소개되며 온정의 손길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수빈이는 생후 1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후 최 씨는 화장한 수빈이의 유골함을 집에 두고 살아있는 아이처럼 대했다. 알고 보니 엄마 최 씨가 아이를 떠나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데... 수빈이를 떠나보내기 2년 전, 최 씨 부부는 친딸 서연이(가명)를 잃었다. 미숙아로 태어났던 서연이 역시 병원에서 지내다 20개월 만에 사망했다. 친딸에 이어 입양한 딸마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아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최 씨는 수빈이가 세상을 떠난지 2년이 지나자 셋째 딸 민서(가명)를 입양했다. 하지만 민서 역시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병원을 찾게 된다. 퍼렇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못 쉬던 민서도 결국, 시름시름 앓다 숨을 거뒀다. 최 씨의 세 아이들이 만 세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잇달아 사망하게 되자 주위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반복된 아이들의 죽음을 두고 흉흉한 소문이 이어졌지만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 세 아이의 죽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어느 날, 김동영 보험조사원은 다른 보험사 후배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 집에서 세 아이가 연달아 죽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 만 세 살이 되기 전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 이상한 점은 세 아이의 증상과 사망원인이 모두 똑같았다는 사실. 김동영 조사원은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고는 사건내용이 적힌 파일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간다. 과연 그는 세 아이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영원한 나의 슈퍼맨 - 운명을 건 세 번의 승부 1982년 3월,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축제라도 열린 듯 쏟아지는 함성에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이곳은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 경기에 푹 빠져있는 관중들 사이로 비장한 표정의 한 남자가 들어선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다름 아닌 카메라? 사진학을 전공하는 24세 대학생 이광진 씨. 응원하는 팀을 사진에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라는데... 그가 응원하는 팀의 정체는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1982년 3월 27일, 대한민국 최초 프로야구 출범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시작됐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첫 데뷔전은 개막식 다음 날인 3월 28일. 상대는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 삼성 라이온즈다.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경기. 라이온즈의 팬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모두가 라이온즈의 승리를 예상했는데... 과연 최약체 팀으로 꼽히던 슈퍼스타즈는 어떤 플레이를 했을까? “2회 초, 슈퍼스타즈의 공격입니다. 타석엔 양승관 선수, 아 쳤습니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한 점 앞서가는 슈퍼스타즈.” “라이온즈의 4번 타자 이만수, 공이 멀리, 더 멀리!! 담장.. 넘어갑니다! 이만수의 솔로 홈런 동점을 만들어내는 라이온즈.” 모두가 슈퍼스타즈의 열세를 예측했던 것과는 다르게, 엎치락뒤치락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치열한 경기가 펼쳐진다. 끝내 최강팀인 라이온즈를 뒤엎고 프로야구 첫 데뷔 경기에서 5:3으로 승리를 거둔 슈퍼스타즈! 과연 짜릿했던 첫 승의 기세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장미정원의 비밀 때는 1975년, 부산 수영만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자들의 별장지대로 한 젊은 남자. 이태리제 고급 승용차를 끌고, 독일산 셰퍼드 5마리를 키우는 모습은 여느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이었는데... 이상한 건 남자의 행동이었다. 이중 철제대문을 달고, 대문 위 CCTV를 설치한 후 담장 위에 철조망을 치는 등 극도로 보안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며 이웃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것.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마당 가득 빨간 장미를 심고, 장미정원 위에 환풍기를 설치한 남자. 그가 꼭꼭 감추고자 하는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비밀 궁전을 세운 남자의 정체는 한국의 1세대 마약왕 이황순. 이황순은 대학 중퇴 후 부산의 유명한 조직폭력배인 칠성파의 조직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조폭의 주요 돈줄이었던 일본과의 밀수에 가담해,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 이황순. 뒤이어 히로뽕 밀조 기술을 배운 뒤 밀수 유통 라인을 더해 점점 히로뽕계의 거물로 성장하는데... 한편, 당시 밀수 수사에 앞장서고 있던 인천지검의 윤재기 검사. 그는 어느 날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밀수선에 대한 결정적인 자백. 첩보에 따라 홍콩에서 인천항으로 들어온 밀수선을 급습해 다량의 히로뽕 원료인 염산에페드린을 적발하는데. 원료를 주문한 제조 총책을 추적하자 드러나는 히로뽕 밀조 최상선의 실체... 그는 바로 마약왕 이황순이었다! 일분일초가 급박했던 수사진은 곧바로 ‘이황순 체포 작전’에 돌입한다. 오랜 잠복 후 이황순의 귀가를 포착한 수사진. 그러나 경찰에 총을 겨누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이황순.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협박하는데... 과연 이황순은 체포되었을까?
한여름 밤의 악몽 - 1998 지리산 폭우 1998년 7월 31일. 여덟 살 민수와 가족들은 여름휴가를 맞아 지리산 계곡으로 향했다. 그런데 자리 잡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워낙 극성수기이기도 했지만 당시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로 인해 나라뿐 아니라 서민 경제도 최악이라 호텔, 펜션보다 야영을 선택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것이다. 민수네가 향한 대원사 계곡에만 그날 하루 무려 1400여 명이 입산했을 정도다. 대원사 계곡에서 조금 떨어진 화개계곡도 마찬가지다. 수백 개의 텐트들이 줄지어 선 계곡 바로 옆 화개면사무소에서는, 신입 공무원 하용식 씨와 이삼규 씨가 늦은 시각까지 근무 중이었는데. 해가 진 후 갑자기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 예보에 없던 비가 갑자기 쏟아질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폭우가 내린다면 계곡물이 넘치는 건 시간문제다. 두 공무원이 진땀을 빼며 텐트를 철수시키는 사이,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불어난 계곡물은 다리까지 무너뜨리며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넘쳐흘렀다 휴가지에서 한순간 가족을 잃은 사람들,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나선 의인들, 그해 여름, 지리산에서의 악몽 같은 하루를 겪은 이들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작전명: 집으로 2009년 8월, 한지수의 언니 지희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오기로 한 동생 지수가 공항 어딘가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도착했지만 지수의 핸드폰은 꺼져있고, 비행기 탑승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막막한 상황에서 언니 지희의 핸드폰으로 믿기 힘든 전화가 걸려 온다. “유어 시스터 이즈 인 프리즌!” 자신을 이란 여성이라 밝힌 그녀는 지수가 인터폴 유치장에 갇혀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지수가 체포된 이유다. 지수는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사건 발생 1년 후, 단순 목격자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한 살인자가 되어버린 지수. 과연 온두라스 검찰이 내민 타살 증거는 무엇일까? 유죄가 인정된다면 지수가 받게 될 형량은 무려 30년이다. 결국 무법지대 온두라스 감옥에 갇힌 그녀를 구하기 위해 외교부와 법의학자, 그리고 국제 변호사로 이뤄진 ‘드림팀’이 꾸려졌다. 사건 발생 15년이 지난 지금, 지수는 무죄를 받고 풀려났을까? 아니면 여전히 온두라스 감옥에 구금된 상태일까?
그가 전설이 된 이유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1968년 11월, 서울 종로에 있는 YMCA 건물 안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사래를 치고 까까머리의 한 소년은 사정사정하며 매달리는데... 무슨 상황인 걸까? 바로, 한 소년이 회원권 만료일을 위조한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회원권은 다름 아닌 수영장 회원권! 소년은 오직 수영 하나만을 바라보고 학교까지 관두며 땅끝마을 해남에서부터 서울로 올라왔다는데. 생계를 위한 간판 집 심부름부터 수영장 청소까지 하면서 그 외의 모든 시간을 수영 연습에만 매진했던 의지의 소년. 그의 정체는 바로 훗날 대한민국 수영 역사의 레전드가 된 조.오.련. 까까머리 소년이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할 때까진 절대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수영. 그렇게 출전한 첫 대회. 1969년 6월, 전국체전. 소속 학교가 없던 열여덟 오련은 일반부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한다. 그리고 일반부 사이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 놀랄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더니 마침내 대한민국을 대표해 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인데. 그렇게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 당시 메달 26개 중 26개 전부를 쓸어갈 정도로 수영 강국이던 일본과 실력을 겨루게 된 오련. 과연 1년간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결과는? 이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한민국 수영의 새 역사를 쓴 조오련. 혜성처럼 등장했던 조오련은 다시 한번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로 오직 헤엄으로만 대한해협을 건너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조오련은 고강도의 훈련 끝에 예상 기록을 무려 6시간 앞당긴, 13시간 16분 만에 60km 거리의 대한해협을 건너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오련의 도전이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데. 인생이 곧 도전이었던 조오련. 그동안 전해지지 않았던 그의 진짜 이야기
때는 2002년 4월 15일. 월드컵의 열기가 달아오를 쯤, 김해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때 들려온 점심시간 종소리. 하지만 교실 안은 핸드폰을 보며 웅성거리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중 학생회장인 상욱이도 한 문자를 보며 놀란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산에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것. 베이징을 출발해 김해국제공항으로 오던 승무원 포함 승객 166명, 그중 136명의 한국인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한 것이다.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사고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그날의 추락사고. 비행기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영웅은 존재했다. 다름 아닌 여행 가이드 설익수 씨. 그는 중국에서 첫 가이드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고 생각하던 그날, 설익수 씨는 관광객들의 여권을 호텔에 두고 오는 실수를 저지른다. 다행히 탑승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오른 일행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들에게 어떤 비극이 찾아올지 몰랐다.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충격과 함께 동체가 찢기며 비행기가 산에 추락한 것이다. 찢어진 동체 사이로 비친 빛을 따라 밖으로 기어 나온 설익수 씨는 코를 찌르는 항공유 냄새를 맡게 되는데... 비행기 폭발의 위험에도 사람들을 구조한 설익수 씨. 그는 어떤 마음에서 탑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꼬꼬무에서 직접 그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비행기는 불길에 휩싸이고 밤까지 이어진 필사의 수색 이후, 시신 사진과 유류품 사진이 유족들에게 공개됐다. 하지만 사진을 봐도 가족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추락 충격과 화재로 인한 손상으로 탑승객들의 신원 파악이 쉽지 않는데... 가족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직접 사고현장에 오른 가족들. 이들이 목격한 광경은 어떠했을까. 참혹한 현장만 남긴 비행기는 어떻게 추락한 것일까. 얼마 뒤 비행기의 이동 경로와 조종실에서의 녹음 기록이 밝혀지는데... 게다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생존으로 충격적인 사고 전말이 드러난다. 과연 이 기록들은 그날의 사고를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비 오는 밤 갑자기 2003년 8월 20일 새벽.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던 회사원 홍 씨는 뒤늦게 시간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우산을 펴들고 하숙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르던 그 순간... 갑자기 홍 씨의 의식이 끊기고 말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아무런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잠시 후 한 간호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환자분... 퍽치기당하셨어요.” 퍽치기! 느닷없이 달려들어 한 대 퍽 치고 돈이나 물건 따위를 빼앗는 강도 행위를 말한다. 홍 씨는 자신이 퍽치기 범죄의 피해자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며칠 후 피해자 진술조서를 위해 서대문서 강력반 형사들이 홍 씨를 찾아온다. 조사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던 형사의 혼잣말이 홍 씨의 귀에 들려온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냐.” 홍 씨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인근에서 2건의 퍽치기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단순 퍽치기가 아닌 연쇄 사건일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얼마 후, 네 번째 사건이 일어나고 마는데..